[베트남 정보] 후 에 ( H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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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945년 동안 구엔 왕조의 도읍지였던 고도,도읍으로서 후에는 종교,문화,교육의 도시이다. 215세기 까지 베트남 중부에서 남부에 걸쳐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참파왕국이 멸망하자 내란과 세력분쟁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중부의 요충지였던 후에는 각 세력의 거점 역할을 했고, 15세기에 후에를 중심으로 남부를 장악한 세력이 구엔가문이였다.

구엔 가문은 17세기 타이손 당의 난으로 추방을 당하지만 다시 탈환하고, 1802년에는 구엔 푹 안이 프랑스의 협력을 얻어 구엔 왕조를 건국한다.

 

1804년 국호를 베트남으로 정하고 그 후 프랑스 등 여러나라의 국정 개입을 받으면서도 13대까지 구엔 왕조는 지속되었다. 화려한 황제의 무덤, 주목할만한 탑들, 잔존하고 있는 성채 등이매력적인 관광지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의 도시 후에는 베트남 역사의 주요 무대로 수많은 왕의 무덤과 사원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유서 깊은 도시이며 베트남 관광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후에 지역에는 베트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많은 역대 왕들의 무덤과 군들이 산재해 있다.

 

투득 황제릉

구엔 왕조에서 가장 재위 기간이 길었던 제4대 황제의 왕릉이며, 후에에서 7km떨어진 두옹수안 투옹마을의 반니엔산에 있다. 186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867년에 완공된 이 왕릉은 재위 중에 별장으로 사용하였으며 후사를 돌볼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능을 직접 설계하고 감독도 했다고 한다.

 

부지 안에는 중국식의 정자가 있는 연못과 누각, 작은 시내도 있어 풍류를 느끼게 하며 시인 이기도 했던 황제는 이 연못에서 낚시를 하거나 누각에서 시를 지었었다고 한다. 황제의 시신을 안치한 사원안에는 투득 황제의 업적을 새겨놓은 묘비가있다.

 

카이딘 황제릉

후에에서 10km 떨어진 차우구 구릉지역에 있는 이 왕릉은 프랑스 통치 시대인 1920년부터 카이딘 황제의 사후 6년이 지난 1930년 까지 무려 10년의 역사 끝에 조성한 왕릉이다. 성당처럼 보이는 이 왕릉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함께 스며있는 장대한 축조물로 도자기를 깨뜨려 그 조각으로 상형문자와 상징적인 형태의 장식문양을 짜 맞추어 놓았다.

 

다른 왕릉과는 분위기가 다르며 솜씨 또한 탁월한 예술적으로 뛰어난 왕릉이다. 왕릉 앞에는 말과 동상, 명사들의 석상들이 줄지어 왕릉을 수호하고 있으며, 내부의 옥좌에는 금박을 입힌 카이딘 황제상이 있고, 그 밑에는 황제의 시신이 안치 되어 있다.

 

민망 황제릉

향강(香江, Perfume River)왼쪽 편에 있는 캄케산에 만들어진 왕릉은 후에에서 12km정도 떨어져 있다.중국 문화를 선호했던 제2대 민망황제가 직접 설계하여 1841년부터 3년간에 역사(役事) 끝에 완공되었다.납작돌을 깐 정원과 묘 앞에 있는 초승달 모양의 연못 등이 중국식의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으며,장중함과 함께 근엄한 구조와 아름다움이 후에 왕릉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티엔무 사원

흐언 강 언덕에 위치한 사원으로 높이는 약 21m 7층 팔각탑이다. 이 팔각탑에는 각 층마다 불상을 모셨고 옆에는 시내까지 소리가 울린다고 하는 범종이  자리하고 있다. 뒤뜰에는 1963년 사원의 주지승이 불교 탄압에 저항해 사이공에서 분신 자살을 기도했을 때 타고 있던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다.

 

혼쩬전

후에 시내에서 약 8km 떨어진 흐언 강변에 위치한 이 사원은 강과 태양의 신을 받드는 사찰로 언덕 정상의 본전에서는 혼쩬신을 받든다. 참족의 신인 포나가르를 모셨던 사원 이라고 한다.

 

구엔 왕조 왕궁

1802년부터 1945년 까지 13대에 걸쳐 존속한 구엔 왕조의 왕궁으로" 커다란 궁전 " 이란 뜻이다. 600m 의 왕궁 주변은 높이 5m 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왕궁 안에는 황족들의 저택이나 보살사 등이 남아있다.

 

 -  응오몬 (왕궁문)

관광객들이 입장하는 문으로 4개의 문중 남쪽에 위치한 문이다. 태양이 정상에 오는 남문을 정문으로 삼는 중국 관습에 맞춰 이문이 궁전의 정문이 되었다. 2대 민망황제 시대가 창건되었고, 12대 카이딘황제 시대때에 재건 되었으며, 3개의 입구 중 중앙문은 황제가 외출할때만 사용 하였다고 한다.

 

 - 태화전

중국 북경의 자금성을 본 따 만든 궁전으로 응오몬의 정문에 자리하고 있다. 1803년 초대 황제 가륭제 때 창건 하였고, 이곳에서는 황제의 즉위식이나 국빈 환영식 등이 거행되었다. 대청마루 중앙의 대좌 위에는 황제가 앉았던 금박의 옥좌가 놓여있고, 태화전 앞에 있는 금수교는 황제만이 건널 수 있는 다리 였다.

 

 - 현임각

태화전 왼쪽에 있는 구엔 왕조의 보살사 이다. 앞뜰에는 고,,,,,,,,현 이라고 씌여있는 9개의 세발 솥이 놓여 있고,이 세발 솥들은 왕조의 정통성과 부동성을 상징하며, 각각 19세기에 왕위를 지켰던 황제들을 기려 주조하였다고 한다 .그중에 중앙에 있는 화려하게 장식된 솥이 초대 황제 가륭제의 것이며 내부에는 각 황제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후에 궁전 박물관

1845년 궁전의 하나로 건립 되었다가 1923년 박물관으로 재개장한 이곳은 구엔 왕조의 장식품, 미술품, 황 족의 애장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황실의 많은 유물들이 소실되었으나, 남아있는 나전 세공의 테이블과 의자, 금실 자수가 놓아진 황제와 황후의 의상 등이 호화로웠던 왕실 생활을 전하고 있다.

 

트아티엔 후에 박물관

베트남 전쟁 당시 후에의 전투사를 전시한 곳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격렬했던 전투로 유명한 1966년 후에 공방전을 사진.지도로 전시해 놓았다. 앞뜰에는 미군의 전차와 대포, 베트남군의 실제 전투에서 사용되었던 많은 무기들이 전시 되어 있으며,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느낄 수 있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후에의 또 다른 역사를 알게 해 준다.

 

헌루엉 철교

베트남 분단의 상징이기도 한 철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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